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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청년 봉준호에서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성장한 봉준호감독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2000년대 초중반에 전세계 해외영화제에 가면 "이런 감독들이 어디에 있다가 한꺼번에 지금 나왔습니까?"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 봉준호 감독은 '노란문' 얘기를 한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노란문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학생운동은 끝나고 무엇을 해야될지도 모르는 막막한 90년대 초에 미친듯이 다들 모여서 영화 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세대가 시네필 첫 세대라고 합니다. 이때 동아리 이름이 노란문이라고 합니다.

모여서 각자 아는 얘기 떠들고 어디서 들은 얘기 있으면 그거 떠들고 그런 모임이였답니다.

나처럼 이런 영화들을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고 그 영화를 같이 보고 공감하고 토론하는 공간, 노란문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노란문시절처럼 영화에 미쳐 있었던 시간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봉준호감독

1969년 2남 2녀 중 막내로 예술가 집안의 막내로 태어납니다.

광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던 봉준호감독은 자연스럽게 14살 나이에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가지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소심한 성격이었던 봉준호는 도저히 연극영화과에 진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연극영화과에 오는 친구들은 왠지 모르게 기가 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고민이었을지 모르나 소심했던 봉준호에게는 큰 고민이었다.

이러던 중 봉준호는 그 당시 가장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던 이장호 감독과 배창호 감독 모두 건축미술학과,경영학과로 영화과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 꼭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1988년 88학번으로 대학생이 된 봉준호는 더욱더 영화에 심취하게됩니다.

봉준호는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모아 영화를 보러 다녔고 함께 본 영화로 토론도 하였다.

군대를 다녀온 뒤 1993년 복학한 후에 대학생 연합 영화 동아리 노란문을 만든다.

학교에 속한 동아리가 아니었기에 홍익대학교 앞에 회원들의 운영되는 사무실을 차렸었고 이 사무실에는 영화 공부에 뜻을 가진 신촌 주변 대학생들이 몰려들었었다.

노란문은 무려 40명 규모의 동아리가 되었고 봉준호는 이 노란문에서 영화를 보고 분석하고 실제로 찍어 보기도 하며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갔다.


필모그래피

< 룩킹포파라다이스(Looking For Paradise) >

봉준호의 첫 애니메이션 작품 "룩킹포파라다이스"는 봉준호가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돈을 모아 산 히타치 캠코더로 고릴라 인형을 이리저리 찍으며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고통 그 자체였다. 4일 내내 찍어 나온 결과물은 10초를 채 넘기지 못하였고 이는 고통과 허무함을 느끼게 하였다. 이 고통스러움과 허무함은 봉준호로 하여금 애니메이션은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게 하였다.

그로 인해 첫 애니메이션이자 마지막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 백색인 >

노란문 동아리 사람들과 백색인이라는 실사 영화 데뷔작을 찍습니다.

이 단편 영화 백색인을 포트폴리오 삼아 영화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됩니다.


< 지리멸렬 >

영화아카데미에서 1년간 배움을 토대로 지리멸렬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백색인을 흥미 있게 본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함께 일하자고 권유받기도 하였습니다.

 


< 살인의추억 >

첫번째 작품 <플란다스의개>가 처참히 망하며 두번째 작품 <살인의추억>이라는 걸작을 내놓게 됩니다.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500만 관객을 이끌며 봉준호를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올리게 됩니다.

34살 기나긴 인고의 세월 끝에 감독으로서의 성공을 드디어 거두게 됩니다.


< 괴물 >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영화계에서 할리우드와 같이 CG가 가득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봉준호 감독은 호기롭게 CG영화인 <괴물>제작에 돌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괴물>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쉽지가 않았습니다. 화려한 CG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국내에 없었기 때문에 봉준호감독은 외국 기업과 일을 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봉준호는 예산 문제로 극심한 고통을 겪게됩니다.

봉준호는 CG에 대해 미친 듯이 공부하였고 꼭 필요한 장면에만 괴물이 나오며 예산을 맞추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 영화 <괴물>은 무려 1,000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크게 성공합니다. 


< 마더 >

이후 봉준호감독은 괴물과는 아예 다른 장르의 영화 <마더>를 선보여 상을 휩씁니다.


< 설국열차 >

캡틴아메리카로 유명한 크리스 에반스 배우를 필두로 한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만든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적으로 봉준호라는 이름의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 옥자 >

넷플릭스와 함께 만든 영화 <옥자>


< 기생충 >

2019년 봉준호감독 작품 <기생충>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믿을 수 없는 성과를 거두며 봉준호를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게됩니다.


이처럼 봉준호감독은 장르,국가,플랫폼을 넘나들며 영화를 만들어 봉준호라는 장르를 구축해나갑니다.

정말 대단한감독입니다. 앞으로의 영화행보에 대해서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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